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아 들고 헬리코박터 양성이라는 문구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얼마나 심각한 건지 감이 잘 안 왔습니다. 위에 세균이 살고 있다는 게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고, 당장 증상도 없으니 그냥 지켜봐도 되는 건지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지도 몰랐습니다.
주변에 물어봐도 나도 양성이었는데 그냥 뒀다는 사람, 약 먹고 없앴다는 사람이 반반이라 더 헷갈렸습니다. 그러다가 헬리코박터균이 위암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게 된 뒤로는 더 이상 가볍게 볼 수 없겠다 싶었습니다. 증상이 없다고 해서 안전한 게 아닌 게 바로 이 균입니다.
위 안에 세균이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는 강한 산성 환경인 위 속에서 살아남는 거의 유일한 세균입니다. 이 균은 위산을 중화시키는 암모니아를 스스로 만들어내면서 위점막(Gastric Mucosa), 즉 위 안쪽을 보호하는 점막층에 자리를 잡고 지속적으로 염증을 일으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표재성 위염 수준에서 시작하지만, 수년에서 수십 년에 걸쳐 방치되면 위축성 위염(Atrophic Gastritis), 즉 위점막 자체가 얇아지고 기능을 잃어가는 단계로 진행됩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 그냥 지켜보자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위축성 위염이 더 진행되면 장상피화생(Intestinal Metaplasia) 이 나타납니다. 장상피화생이란 위점막 세포가 장 세포와 유사한 형태로 변형되는 현상으로, 이 단계부터 위암 발생 위험이 급격히 높아집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된 사람은 비감염자보다 위암 발생 위험이 2-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조기에 제균 치료를 받으면 위암 발생 위험을 최대 30-40%까지 낮출 수 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증상이 없어도 치료를 권고하는 이유가 바로 이 수치 때문입니다.
헬리코박터균 감염의 가장 흔한 증상은 사실 아무 증상도 없는 겁니다. 감염자의 약 70-80%는 평생 뚜렷한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채로 지냅니다.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속 쓰림, 공복 시 상복부 통증, 식후 팽만감, 잦은 트림, 메스꺼움이 반복되는데 이게 단순 위염과 구분이 어렵습니다. 속이 자주 쓰리고 위장약을 달고 사는데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면 헬리코박터 검사를 한 번쯤 받아보는 게 맞습니다.
감염 경로가 생각보다 가깝습니다
헬리코박터균의 감염 경로는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오염된 물이나 음식을 통한 경구 감염과 감염자와의 직접 접촉이 주요 경로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한소화기학회에 따르면 국내 성인의 헬리코박터 감염률은 약 50% 수준으로, 위생 환경이 개선된 요즘도 여전히 높은 편입니다. (대한소화기학회) 특히 어린 시절 감염된 경우가 많고, 한 집에 감염자가 있으면 가족 간 전파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헬리코박터 양성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녀들도 함께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찌개나 국을 함께 떠먹는 식문화, 어린아이에게 음식을 씹어서 먹이는 습관도 감염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지목됩니다. 입을 통해 전파되는 균인 만큼 개인 위생과 식기 사용 습관이 감염 예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위생 관념이 철저하다고 자부하는 분들도 가족 중 한 명이 양성이라면 자신도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현명합니다. 가족끼리 같은 찌개를 수십 년간 같이 먹었는데 나만 음성일 거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양성 판정을 받았다면, 제균 치료가 답입니다
헬리코박터균 감염이 확인됐다면 제균 치료(Eradication Therapy)를 받는 것이 권장됩니다. 제균 치료란 두 가지 항생제와 위산 억제제를 동시에 복용해 위 안의 헬리코박터균을 완전히 없애는 치료로, 보통 10-14일간 약을 복용합니다. 치료 성공률은 약 80-90% 수준인데, 항생제 내성이 생긴 경우 1차 치료로 제균에 실패할 수 있어 이 경우 2차 치료로 다른 항생제 조합을 사용합니다. 제균 치료 후 4주가 지나면 요소호흡검사(Urea Breath Test)를 통해 제균 성공 여부를 확인하는데, 요소호흡검사란 특수한 탄소가 표지 된 요소를 마신 뒤 내쉬는 숨에서 헬리코박터균이 분해한 이산화탄소를 검출하는 방법으로 비교적 간단하고 정확합니다.
제균에 성공한 뒤에도 재감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위내시경을 정기적으로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균 치료를 받고 나서 속이 훨씬 편해졌다는 분들이 많은데, 그동안 균이 일으키던 만성 염증이 사라지면서 위 상태가 안정되는 것이 직접적인 이유입니다. 제균 전과 후의 차이를 몸으로 느끼고 나면 진작 치료받을 걸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헬리코박터균은 증상이 없어서 모르고 지내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위내시경을 받아본 적 없고 헬리코박터 검사도 해본 적 없다면, 지금이 검사를 받기에 딱 좋은 시점입니다. 특히 40대 이상이거나 가족 중 위암이나 위궤양 병력이 있다면 더더욱 미룰 이유가 없습니다.
저희 집에는 위암에 대한 가족력이 있기 때문에 특히 위건강에 대해 신경이 쓰입니다. 헬리코박터균은 장에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저희 가족 모두 검사를 받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양성 판정을 받는다고 당장 큰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모르고 지내다가 위축성 위염이나 장상피화생으로 진행된 뒤에 발견하는 것이 훨씬 더 문제입니다. 제균 치료는 2주면 끝나고, 그 2주가 이후 수십 년의 위 건강을 지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속이 자꾸 쓰리고 불편한데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면, 다음 건강검진에서 헬리코박터 검사를 꼭 챙겨보시길 바랍니다.